►►► 이천도량 

 

 

2022년 12월 17일  토요법회,  

< 관세음보살 구생경 > 기도 봉행하였답니다~~

 

 

 

 

►►►►►   원장스님의  < 법화경 8대 비유 >  법문 중에서 .....

 

 

나무 삿다르마 뿐다리까 수뜨라

나무 삿다르마 뿐다리까 수뜨라

나무 삿다르마 뿐다리까 수뜨라

()()()

 

 

7. 훌륭한 의사의 비유

                                                                                                                  <법화경 8대 비유> 책 68쪽

 

 

왜냐하면 여래는   욕계색계 무색계의 참모습을 실상대로 알고보니 모든것은 

태어나고 죽고하여 반드시 변화하는 것같지만, 다만오직 현상일에 불과하며 

여래안목 으로보면 모든것은 나타남도 사라짐도 없음이니 생명체는 그대로다 

존재할뿐 이세상에 있다거나 이세상을 떠난다고 하는것은 본래없는 것이니라.

 

실재사물 있다함도 잘못이요 없다함도 잘못이니 중생들과 여래가    이세상을

보는것이 같지않기 때문이다.

 

 

 

►►► 이천도량 < 오백나한전 > 에 모실 나한님

 

 

오늘은 < 법화경 >의 내용중에서 통틀어서 가장 핵심 · 중심 내용이다.

 

왜냐하면 여래는   욕계색계 무색계의 참모습을 실상대로 알고보니

부처님께서는 항상 본인을 지칭할때 ' 여래 ' 라고 하셨다.

' 나 '라는 말을 많이 쓰는 사람은 아상(我相)이 많은 사람이다. 그 사람 언어 습관만 봐도 아상이 많은지 적은지를 알 수가 있다. '나' '나의' '나를' '우리' 다 마찬가지다. 이런 말을 되도록이면 피해 쓰는 것이 좋다. 그래야 아상이 조금 줄어든다. '나'라는 말이 필요할 땐 어떻게 하느냐? 예를들면 나라고 안 그러고 '월호스님'이 이렇게 쓴다. 나라는 말을 안 쓰고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다. 

부처님은 평생 아상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 나 '라는 말을 안 쓰셨다. 

' 여래 ' 라는 말을 쓰셨다. 

우리는 부처님이라고 부르는데, 부처님보다 더 좋은 말이 ' 여래 ' 라는 말이다.

' 석가모니부처님 ' 보다 ' 석가여래 ' 가 더 좋은 말이다. 

왜 그러냐?

부처님이라는 말은 ' 붓다 ' 깨달으신 분이다 이런 소리다. 

그런데 깨닫고 나서 그냥 홀연히 가벼렸으면 여래가 아닌거다.

' 여래(如來) '라는 것은 이와 같이 오셨다. 올

' 중생들에게 우리에게 오신 분이다 ' 이 소리다.

부처님이 우리에게 안 오셨으면 법을 설하지 않으셨으면 아무도 몰랐다. 

法을 알 수가 없고 존재를 알 수가 없었다.

부처님께서 성불하셨을 때 망설이셨다. 

중생들에게 설해 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왜? 망설였을까?

얘기 해 봤자, 못 알아 들을 것 같아서다.

사람들의 생각은 전도(顚倒) 되어 있다. 거꾸로 된 이게 이 몸이 진짜 나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음이 내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완전 전도망상 이라는 거다.

몸도 뭐다?

아바타!

마음도 뭐다?

아바타! 

부처님께서 이런 얘기를 해 주면 알아 들을까? 괜히 비판, 비난을 해 가지고 구업이나 짓지 않을까? 이때 범천이 내려 와서 부처님께 청을 한다. " 부처님, 세상에는 그래도 알아 들을 사람이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법을 설해 주소서! " 하고 요청을 했다. 부처님은 설 할까 말까 반반이였는데, 범천이 와서 설 해 주소서! 하는 바람에 그럼 설 할까 이렇게 됐다. 처음에 5비구에게 법을 설하고 쭈욱 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제대로 알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부처님 당시 통틀어서 제대로 알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1,250 아라한 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어렴풋이 알아 듣거나 여럼풋이 알아들으면 수다원 · 사다함 · 아나함이고

아니면 전혀 못 알아 듣는 사람들이다.

 

그럼 무슨 말을 하셨냐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참모습을 실상대로 알고 본다.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를 통틀어서 온세상을 얘기 한다. 인간은 물질세계와 정신세계가 복합적인 존재다. 주로 물질계는 축생들이다. 개, 돼지는 인간처럼 사유가 안 되고 본능대로 산다. 축생과 인간이 다른 점은 보시를 할 줄 안다. 또 대면관찰을 할 줄 안다. 법문을 들을 줄 안다. 

 

모든 세계의 참모습을 실상대로 보니까,

모든 것은 태어나고 죽고하여 변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다만 오직 현상일에 불과할 뿐이며,

여래 안목으로 보면 모든 것은 나타나는 것도 없고 

사라지는 것도 없으니 생명체는 그대로다 존재 할 뿐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태어 나고 죽고 하지만 그것은 그냥 현상이다. 허공에서 구름이 홀연히 생겼다가 홀연히 사라져서 없어진다. 구름이 태어 났다가 죽는 걸로 보이긴 보인다. 그런데 구름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다.

구름을 신이 만들었을까? 아니면 마음이 만들었을까? 그게 아니다. 

그냥, 허공이라는(因)과 습기라는 (緣)이 만나서 순간적으로 생겨났다가 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리는 거다.

그러니까 실체는 없고 현상만 있다. 현상은 계속 변화 한다. 

이걸 정확히 말하자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 공(空) ' 하다 라고 말 한다. 

고정된 실체가 없고 변화하는 현상이 있을 뿐이다. 

 

여러분도 이 몸도 마찬가지다. 고정된 실체가 없다. 

나이 먹으니까 어제의 몸과 오늘의 몸이 다르다. 이게 뭐냐면 고정된 실체로서의 내 몸뚱이는 없다. 계속 변화 한다. 그래서 몸뚱이는 생노병사(生老病死) 하고 마음은 생주이멸(生住異滅) 한다. 우주는 성주괴공(成住壞空) 한다.

모든 존재는 변화하는데 거기 어디에도 고정된 실체는 없다. 

 

여러분들이 죽는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원자가 잠시 흩어져서 다른 원자가 될 뿐이다.

레고블럭 같은 거다. 레고 블럭으로 인간을 만든다 그랬다가 지루하니까 싹 부셔서 또 축생을 만들고 싹 부셔서 천상을 만들고 이게 똑같다. 

여러분이 죽어도 원자는 소멸이 안 된다. 여러분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는 절대 소멸이 안 된다.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다. 다른 형태로 바뀔 뿐이지 없어지는 것도 하나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하나도 없다. 

 

형태만 바뀌는데, 어떻게 형태가 바뀌냐?

여러분들이 살면서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다음 번 레고블럭은 축생을 짤 수도 있고 인간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천상에 태어 날 수도 있다. 이것이 육도윤회다.

알고 보면, 육도윤회라는 것도 본래 없는 거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이 세상이 존재하고 육도윤회도 있다 하고 살면 육도윤회가 진짜 있는 것이 되 버린다. 

지금 이 세상이 가상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살면,,,

천당과 지옥도 다 뭐가 된다?

< 가상현실 > 이 되는 거다.  

 

그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의 조작이다. 

그래서 마음의 조작을 잘 해야 되는 거다. 

 

"  나는  본래  크고~  밝고~  충만하다~  !  " 

그러면, 크고 밝고 충만해 지는 거다. 

마음은 조작이다. 

여러분들이 기분 좋지도 않은데 가짜로 웃으면, 

웃어 보세요~

" 하하하하~~ "

그러면 진짜 즐거워 진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마음의 조작을 잘 해야 되는 거다.

 

살면서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죠?

그럼, 어떻게 해야 된다?

그냥, 웃으면 된다!

 

" 우하하하하~~  "

 

바로 지금 여기서 웃으면 웃을 일이 생기는 거다. 

웃는 게 웃을 일이다. 이게 고급 인과(因果)다.

이게 중요한 < 인과의 법칙 >이다. 

 

 

 

►►► 독성님(나반존자님)

 

 

생명체는 그대로다 존재할뿐!

이세상에 있다거나 이세상을 떠난다고 하는것은 본래없는 것이니라.

 

실재사물 있다함도 잘못이요 없다함도 잘못이니

중생들과 여래가  이세상을 보는것이 같지않기 때문이다.

 

여래의 안목으로 보면, 색즉시색(色卽是色) 불안(佛眼)의 안목이다. 

< 금강경 > 에 보면 오안(肉眼 · 天眼 · 慧眼 · 法眼 · 佛眼)이 나온다. 

여러분들이 법문을 듣고 참선을 하는 것은 안목을 높이기 위해서 하는 거다.

 

안목을 그냥 충족 시키려고 하면 안 된다.

내가 보기에 내가 느끼기에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대로만 살려고 하면 결국엔 나중에 죽어서 축생이 되는 거다. 이게 본능에 충실한 거다. 안목을 올려야 된다. 

 

육안(肉眼)은 육안으로 보면 몸이 나다.

눈에 보이는 대로 여기에 초점을 맞춰 살면 축생이다. 인간들이 반 정도다.

천안(天眼)은 천안으로 보면 마음이 나다.

천신의 안목 신의 레벨이다. 신들은 육신의 몸이 아니라 정신세계다. 

어떻게 보면 공부하기에는 인간의 몸이 더 좋다. 몸이 실습자료이기 때문이다.

천신들은 마음만 있기 때문에 실습자료가 없다. 모든 부처님들은 성불하기 직전에 인간의 몸으로 태어 나신다. 인간의 몸이 복닦기 · 도닦기 하기 최적화 된 거다.

지금 여러분들 인간의 몸 받은거 보면 과거생에 복닦기 · 도닦기 하신 거다.

스스로에게 박수   " 짝짝짝짝~~ "

" 장하다~~ "

" 대단하다~~ "

" 훌륭하다~~ "

 " 짝짝짝짝~~ "

" 하하하하하~~ "

 

지금까지도 잘 했는데, 지금부터도 잘 해야 된다. 

육안 · 천안까지는 중생의 안목이다. 

 

혜안(慧眼)은 색즉시공(色卽是空) 모든 존재는 공(空)하다.

공하다는 것은 실체가 없다.  아바타다 이 소리다. 

 

법안(法眼)은 공즉시색(空卽是色) 텅 비였기 때문에 무엇으로든 나타날 수 있다.

' 고정된 실체로서의 내가 없다 ' 가 혜안이고

' 그렇기때문에 무엇으로든 만들 수 있다 ' 가 법안이다.

 

불안(佛眼)은 부처님의 안목이다. 

혜안은 아라한의 안목이고 법안은 보살의 안목이고 불안은 여래의 안목이다. 

여래의 안목은 색즉시색(色卽是色) 이다.

산은 산 물은 물

나는 나 너는 너

이것은 이것 저것은 저것

은 견성성불(見性性佛)이다. 견성 공부인데,

여래의 안목을 키워 주는 것이 참선인 거다. 

 

 

►►► 이천도량 와룡산 

 

 

< 이뭐꼬? > 화두의 답이 뭐다?

< 이것뿐! >

산은 산 물은 물

이것은 이것 저것은 저것

 

< 저뭐꼬? > 하면,

< 저것뿐! >

하하하하~

손뼉치는 놈이 누구?

" 짝 "

 

손뼉치는 이것이 무엇인가?

행위가 있을 뿐! 행위자는 없다.

행위가 행위자다.

이것이 색즉시색(色卽是色)의 안목이다. 

유무(有無)의 초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이 소리를 하는 거다.

그냥, 이것뿐! 이다.

 

웃는 놈이 누구다?

" 우하하하하~ "

행위가 행위자다.

박수치며 웃는 놈이 누구다?

" 짝짝짝짝~ 하하하하~ "

 

박수치며 웃는 놈을 화두로 삼아서 살기를 ...

마하반야바라밀 ()()()

 

 

 

 

 

 

 

 

►►►►►   원장스님의 < 게송명상 실습반 > 강의 중에서 ...

 

 

 

 

►►► 행불 행자의 서원 !!!

 

아는 만큼 전하고, 가진 만큼 베풀자!

전할수록 알게 되고, 베풀수록 갖게 된다.

이것이 바로 행불이자, 부처 되고 부자 되는 비결!

 

행불(行佛) 하세요~~ ()()()